겨울을 닮은 작은 스노우볼과 함께 닿은 편지는 부러 답장 않은 채 작은 박스 안에 넣어 두었다. 선물 받은 것을 쓰지 않고 놓아 둘 수는 없는 일, 책상 위에 두어 이리저리 장식해 보았으나 잉크와 종이 가득한 경관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대 옆, 작은 조명이 놓여져 있는 경대 위에 그것을 올려 두었다. 전등을 모두 끄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 시절의 기숙사, 창문 유리를 통해 새어나오던 그 시절의 별빛에 익숙해진 탓이겠거니 싶었다. 허나 그렇다 하여 아침 햇살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방 창문 위 가려진 두꺼운 암막 커튼을 거둘 생각은 없었고, 아주 옅은 불빛만을 켜둔 채 잠드는 것이 일상.
  비스듬히 누운 채 불빛 아롱지는 것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스노우볼 속의 흰 것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었다. 더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면 손 뻗어 그것을 흔들어본 이후,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 갓난아이들 재우기 위해 천장 위 모빌을 달아 놓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나 어렸을 적에도, 저런 모빌이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 복잡해질 생각이 들 적에는 눈이나 꾹 감고 잠 청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또다른 부엉이, 어쩌면 이번에는 일전 죽었던 자신 소유의 부엉이 '새벽'과 닮은 검은 부엉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편지 한 통이 다시 네게 닿은 것은 스노우볼을 수백 수천 번 흔든 이후인, 눈이라고는 머릿속에만 내리는 것 전부인 봄의 한가운데였다고. 희고 불그스레한 목련의 꽃잎이 바닥에 떨어져 더럽고 추하게 밟히고, 벚꽃 떨어진 가지 사이에서는 뒤늦게 푸르른 이파리가 고개를 든다. 그럼에도 지난 겨울의 냉기 서린 바람은 잦아들지 않았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줄어든 탓일지도 모른다. 이상 기후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1999년 4월 1일, 생일이라 치기에도 애매한 날의 새벽 태양이 떠올랐다.

  부엉이의 부리가 창문을 쫀다. 그 시간 당신은 일어나 있었으련지, 여즉 잠에 푹 빠져들어 있었으련지 확실치 않다. 일꾼 정신 투철한 부엉이는 어떻게든 수신인에게 소포를 배달하기 위해 애를 썼을 터였다. 편지, 아니, 쪽지 조각과도 같은 한 장의 종이와 함께 돌돌 말려 있는 두어 장의 신문이 그 발에 매달려 있다. 잉크조차 마르지 않아 말아 보낸 탓에 군데군데 마르지 않은 잉크 얼룩이 남아 있다. 단어 몇 글자 지워져 있었으나 전체적인 내용 파악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다.

  The Uroborus. 편집자, 노라 로보루스. 기자, 에이프릴 풀, 오로라 나이트, 페가수스 나이트, …….

   


특집 기사.  "마녀 사냥, 그 과거를 되돌아보며."

기자 에이프릴 풀.


  16세기와 17세기, 머글들의 종교적 기준으로…… '종교개혁' 시기 유럽에서 일어난 대학살을 뜻한다.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 마녀 사냥은……소규모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하던 무고한 마법사 가족의 지팡이를 부러뜨리고……

  손톱을 뽑는 고문과…… 순수혈통 마법사 가문 A----의 절멸, ……잔혹한 화형, 집단 폭행, 돌팔매질, …….


  ―더욱이 머글들의 야만성과 무지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런 잘못 없이 목숨을 빼앗긴 마법사들을 추모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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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어, 소위 말하는 낙하산과 같은 꼴로 취직에 성공했으니 직장 생활 힘들다고 할 수도 없었다. 무슨 일 하는지 굳이 물어본 적 없었으니 과거의 친우들이 무얼 하고 지내는지 알 턱이 없다. 졸업 직후, 한 철의 혼란을 겪고 나서 의도한 것마냥 모든 짐들을 모두 호그와트의 고성에 버려두고 몸뚱이와 지팡이 하나만을 챙겨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홀로 존재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 당도해, 옷가지를 벗어던지고, 그 혼란 속 인간들의 피가 튄 것처럼 느껴져 서너 시간 내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었다. 식지 않는 욕조의 물 사이 발갛게 달아오른 피부가 아롱지듯 시야 속 담긴다. 두 손 모아 물을 손바닥 가득 담아 보면, 그 물보다 선명히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검은 낙서였다. 낙서? 아니, 영영 남게 될 문신. 욕망 넘치는 아가리를 쩍 벌린 채 유혹 어린 시선 보내는 뱀을 토해내고 있는, 그.

  숨기려 했던 것은 이 피부 위의 각인이 아니다. 허나 결국 결론은 그리 났으니 이 현재를 어찌 받아들일지 모호하기만 하다. 지나치게 달구어진 공기 탓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되어서야 물 속을 벗어난다. 아무리 몸을 담그었다 빼 보아도 깨끗해진다는 느낌 하나 없건만 어째서 씻는다는 행위를 그와 연결짓는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이 세상 한 번 큰 홍수라도 일어난다면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고 완벽한 세상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아, 허망하여라. 생부가 지어준 이름에 붙잡혀 그 가공된 이야기에서 좀처럼 빠져나올수가 없음을 느지막이 깨달았다. 당신 도취된 이야기에 나를 끼워넣지 말라고!

  짜증이 일어 견딜 수 없었다. 일주일 후 생부를 찾아갔다.

  애도를 했어야 할까? 깃털보다 가벼운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 * *



  1999년, 생각해보면 이 숫자 자체도 그 가공된 이야기에서 파생된 산물이다. 그러니 몇 달 이후 그것이 2로 시작되는 놀라운 수로 바뀐다는 것이나 세계의 멸망이나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뿐. 언제 끝이 날지 모를 하루를 시작한다. 어찌 된 일인지 날이 갈 수록 잠이 줄어 해 뜨기 직전 눈을 감아도 선선한 새벽 공기 가득할 시간에 눈을 뜨게 된다. 두 시간, 세 시간? 시간은 재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 수면을 취한 것만으로도 몸은 눈 감은 것이 싫었던 것인지 잠이라는 휴식을 순식간에 죽여 버렸다.

  꿈을 꾸었다. 꿈이라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허망하고 가치 없는 환상이었다. 온 바다의 물을 끌어와 씻어내어도 청결해지지 않을 것 같은 검붉은 손이 되어, 장갑도 손수건도 하나 쥐지 않은 손으로 제 앞에 있는 이의 육체를 틈 없이 더듬고 만져대는 꿈. 그 몸 가득히 검붉은 물이 드는 것을 보아 경멸감 가득한 행복이 차오른다. 무릎 꿇고, 몸 수그려 상대 얼굴도 모르는 주제에 알지도 못 하는 사랑을 고백한다. '잡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소리를 한가득 들은 이후 꿈에서 깨어난다. 본디 꿈이란 내재된 욕망의 방증이라고, 기다란 장갑을 익숙하게 덮어 끼우며 그 말에 납득한다. 구태여 그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필요치 않은 일에 정신을 둘 필요는 없다. 다만 일상이다.


  신문사 'The Uroborus'의 근거지는 런던에 위치해 있다. 명확히 하여, 노라 로보루스와 마리아 로보루스의 공동 거주지 바로 옆 라인의 주택 지하가 그것이다. 신문에 기사를 투고한 기자들의 이름은 죄다 가명들이라 그들의 정체를 추리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만 그 이름을 모두 지고 숨김 없이 활동하는 호노라 메살리나, 그녀가 유일한 얼굴일 뿐. 아니, 기실 그것도 진실이라 할 수는 없었다. 호노라 메살리나라는 이름의 마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지 않은가?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노라'라는 이름으로 부르도록 청했다. 로보루스이자 로보루스가 아닌 그 여자를 주축으로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이 몇 모였다. 언젠가 다시 올 '그 사람'의 영광을 위하여, 언젠가 찾아올 우리의 흐름을 위하여! 

  노라 로보루스, 스타슈에트 부자父子, 노먼 마하트야, ……패기롭게 지팡이 들고 나서기엔 그 힘이 부족하여 숨죽여 때를 기다리던 사람들. 지팡이 대신 펜을 쥐어 그들의 진실을 전하고자 큰 뜻을 품었던, 순수의 시대. 검은 부엉이 날아와 어둠의 마왕, 그의 부활을 전해 들었던 그 때 황홀한 비명을 내지르며 축배를 들었던 이들이 여즉 이곳에 남아 있다.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은 그들의 순수한 피가 지하에 머물러 있다.

  마리아 로보루스, 그들의 주축이 된 로보루스의 이름을 이었다지만 큰 뜻을 펼칠 그 치들은 머글의 피 섞인 이방인을 그들의 쉼터에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여전히 불순물이며, 동시에 이방인이다. 예상 않은 일은 아니었으니 놀라울 리 없다. 보이는 모습 관리할 필요 없는 그들, 이 쉼터 안에서만큼은 명백한 혐오를 드러낸다. 닿고 싶어하지 않는다. 말 섞고자 하는 일도 원치 않는 이가 있어 쪽지 통한 대화만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혐오 섞인 시선, 그들의 숨길 수 없는 우월함에 대한 과시. 말수는 줄었지만 웃음이 늘었다. 그럴 때면 이유 모를 충만함이 차오르고는 했으니까. 그래요, 차라리 날 싫어한다 말하세요. 철컥 소리를 내며 맞아 떨어지는 이 환호는 자기혐오의 연장선인지라.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좋아요. 사랑하기까지 한답니다. 하고, 성모聖母라도 된 양 인자한 미소가 샌다.


  조금 동떨어진 책상에 앉아 펜을 잡는다. 쓰는 글은 가지각색. 편지가 되기도 했고, 기사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수필이 되기도 했다. 유행처럼 흰 머그잔에 담긴 미지근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비주기적으로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 신문사 정규 직원, 유일한 부자 중 아들 쪽. 경멸하는 시선이 유별날 정도로 강렬하다. 그러니 나를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시간 좀 비워."


  그러니 당신, 내 폐를 쥐어짜 죽여 버리시려고. 후에 살해되어 죽게 된다면 그 가해자는 이 니코틴 덩어리이겠거니, 싶었다. 변변한 흡연실 하나조차 없는 지하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모두를 질식시켜 죽여 버리겠다는 말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한 마디 불평이 없었던 이유는 뻔하다.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기자랍시고 모두가 따르게 되는 유행처럼, 식어빠진 커피처럼 폐를 쥐어짠다. 다가가고 싶지 않은 죽음을 보는 일은 위험하고도 유혹적이기에 시가 커터 잡는 일을 놓을 수가 없다. 옛 말 담뱃잎이 몸에 좋다는 얘기도 있었건만 그리 믿음 가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또다시 망설이지도 않고.

  죽어가는 기분이 든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양수 터뜨리고 태어나 인간이 하는 일이란 결국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음을 향한 여정, 전부가 아닐까. 그 정체 모를 결말이 두려워 한 때는 몸을 떨며 책 덮길 거부한 적도 있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미래에 뜻 두기는 가볍고, 결국 몇 초 짧은 순간으로 끝낼 현재만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 검은 머리 선명한 남자와 함께 연기를 공유한다. 특별히 오가는 말은 없다. 하루 두 번, 어쩌면 네 번. 굳이 이 구석진 자리에 와 종종 호흡조차 버거운 이방인 곁에서 시가 끝을 자르는 것은 날 일찍 죽이려는 시도라는 생각 들 뿐이라고.


  그렇게 몇 시간 보내다 보면 해가 진다. 지하에서 해 지는 것을 볼 수는 없건만 그보다 일찍 자리를 뜨기에 그것 인지하기 어렵지 않다. 첫 투고될 기사를 노라 로보루스의 책상 위에 올려두고, 담배 냄새 지독하게 밴 코트를 집어든다. 봄이라 하더만 추위가 가시지 않는다. 겨울이 덜 가신 걸까? 언젠가는 올 봄이니 크게 중요하진 않겠지만서도. 돌아오는 봄조차 봄이 아니겠지. 허나 이조차 제 일이 아닌 양 방관한다.


  3월 31일. 그러니 4월 1일의 달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집이 너무 좁다. 방랑하듯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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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르 날아온 부엉이가 익숙한 양 부리를 비빈다. 그 차가운 감각은 이젠 익숙할 지경이었으나 썩 좋지는 않아, 책상 한 켠에 모아 두었던 간식 몇 개를 창 밖으로 던져 그 짐승을 바깥으로 유인해 버렸을 뿐이다. 정리가 쉽지 않다. 글을 쓰는 법도,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도, 전부 새로이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들 뿐이라 어지러운 머릿속이 곧 책상이 되어 아주 징그러울 정도로 더러운 책상 위. 마구 흐트러진 종이들 사이 검은 새 깃털로 만들어진 깃펜을 집어든다. 비어 있는 편지지를 톡, 톡, 톡, 톡, 톡, ……. 이런 얼룩이나 만들어 내기 위해 손을 움직였던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죽지 못 해 삽니다. 그런 얘기는 입에 담지도 마셔요, 소중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생각해 기운을 얻으셔야죠. 말도 안 될 정도로 틀에 박힌 대답을 하기엔, 그건 너무 가식같지 않니? 죽음이란 것 몇 번이고 눈 앞에서 보았다만 그것 여전히 손에 잡을 수 없을 만치 모호하고, 갈망해야 하는지 거부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도 없다. 다시 없을 정도로 혼란한 세간 가장 가까운 곳에 서서 그 참사를 보고 적는다만 온전한 남의 일로 느껴지기만 할 뿐이다. 체념, 달관, 허무? 이제는 그 이유를 가늠하기조차 번거로워서.

  한 줄, 편지 답장은 그것으로 족하다. 마침 돌아온 부엉이 발목 끝에 편지를 헐겁게 묶는다. 날아가는 도중 허공에 떨어져 버린다면, 그것으로 끝이겠지. 주지 말라 재차 언급했던 간식을 제 멋대로 주었던 것처럼 그 몇 글자 답장 또한 여느 때 변덕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한참 이후 네가 받았을지, 받지 못 했을지 확실하진 않건만. 그 편지는.


*


그럼, …같이 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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